현대자동차(005380)가 경쟁사인 미국 제네럴모터스(GM)와 전방위적인 협력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전동화 격변기'가 있다. 중국 완성차 업체의 공세로 세계 자동차 시장 구도가 흔들리는 가운데 글로벌 3위 자리에 오른 현대차는 GM과 여러 방면에서 협력해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높여 시장 격변기에 펀더멘털을 튼튼히 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美 시장 라이벌' 현대차·GM 손잡았다…"글로벌 상호 보완으로 효율 강화"
현대차는 12일 미국 GM과 포괄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향후 주요 전략 분야에서 GM과 협력을 통해 생산 효율성을 증대하고 제품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회사의 구체적인 협력 내용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잠재적인 협력 분야는 △승용/상용 차량 공동 개발 및 생산 △공급망 △전기 및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기술 등이다. 또 배터리 원자재와 철강 및 기타 소재의 통합 조달 방안도 검토한다.
현대차는 이번 업무협약을 계기로 본 계약 체결을 위한 다각적인 검토를 통해 협업 내용을 발전시킬 것이라며 유연성과 민첩성을 바탕으로 공동의 역량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메리 바라 GM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양사의 이번 파트너십은 체계화된 자본 배분을 통해 제품 개발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며 "상호 보완적인 강점과 능력 있는 조직을 바탕으로 규모와 창의성을 발휘해 경쟁력 있는 제품을 고객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빠르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현대자동차와 GM은 글로벌 주요 시장 및 차량 세그먼트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기회를 탐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양사가 보유한 전문성과 혁신적 기술을 바탕으로 효율성을 향상해 고객 가치를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中 공세·전동화 전환기, 효율성 높여야…현대차, GM 인도 공장 인수 사례
글로벌 시장에서는 현대차가 GM보다 앞서지만,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추격하는 입장이다. 지난해 전 세계 판매량은 현대차(기아 포함)가 724만대(3위)로 377만대를 기록한 GM(7위)을 크게 앞선다. 미국 시장은 GM이 1위며 현대차는 4위다. 미국 시장 내 전기차만 놓고 보면 현대차가 포드, GM을 제치고 테슬라에 이어 2위다.
완성차 업계는 경쟁사인 두 회사가 전방위적으로 협력한 배경으로 전동화 전환을 꼽는다. 지난 몇 년간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전기차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며 대대적인 전동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터널에 진입하면서 전동화 전략이 속속 폐기·수정되고 있다. GM 역시 관련 사업 부문을 축소하고 전기차 생산량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큰 틀에서 전기차 전략을 수정하지 않고 밀어붙일 계획이다. 하이브리드 라인업 확대와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출시 등으로 변화하는 시장 수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전략을 병행하는 정도다.
최근 중국 업체의 급성장도 협력의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비야디(BYD)와 지리(Geely), 상하이차(SAIC) 등 중국 완성차 업체는 자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내수 시장에서 전기차 경쟁력을 강화했고, 전통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위기에 빠뜨렸다. 최근 폭스바겐이 독일 내 공장 폐쇄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게 대표적인 사례다.
업체 간 '합종연횡'의 일상화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본 도요타와 독일 BMW는 수소연료전지차(FCV) 분야에서 동맹을 맺었다. BMW는 도요타와 협력해 2028년 첫 수소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지난 6월에는 폭스바겐이 미국 전기차 업체 '리비안'에 50억 달러를 투자하고 협력 관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미 현대차와 GM은 인도 시장에서 협력한 바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GM의 인도 탈레가온 공장을 인수하면서 현지 생산 100만대 체제를 구축했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신흥시장 생산력을 강화해 글로벌 입지를 높이고, 인도 시장에서 철수한 GM은 효율적인 공급망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밖에 GM은 국내 배터리 업체인 삼성SDI와 미국에 합작 공장을 짓는 등 협력 사례도 있다.
[이동희 기자] yagoojo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