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열린 취임식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관련 정책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현대차·기아의 '하이브리드 대응'이 빨라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그린 뉴딜(친환경 산업정책)'을 종식하고 전기차 의무화를 철회한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그린 뉴딜 종식이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말하는지 알려지진 않았으나, 업계는 바이든 정부가 2030년까지 미국의 전체 신차 판매 대수의 50%를 전기차로 채우겠다고 선언한 것이 이에 속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도 거론하면서 미국 내 전기차 판매 촉진 정책은 상당히 후퇴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IRA와 인프라 법에 따라 책정한 자금 지출을 즉각 중단하라고 지시하면서 "전기차 구매를 사실상 의무화하는 불공정한 보조금 폐지에 대한 검토"를 명시했다.

IRA는 완성차와 배터리 대상으로 △구매자 대상 전기차 세액공제 △투자 세액공제 △첨단 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크게 3가지 혜택을 부여한다. 이중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누리는 최대 7500달러(1074만원)의 세액공제가 전기차 정책 핵심이다.

때문에 업계는 미국 시장 전기차 판매가 상당 수준 둔화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하이브리드차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인프라 부족 등으로 전기차 성장세가 꺾이는 마당에 보조금까지 줄어들 경우 친환경차의 대안으로 부상한 하이브리드가 보조적 역할에서 벗어나 주력 판매 모델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사진=연합
사진=연합현대차와 기아도 미국 내 하이브리드 판매를 늘려갈 전망이다. 실제로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하이브리드 판매량 비중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22만2486대로, 전기차 판매량 12만3861대보다 많다. 지난해 미국 내 실적을 견인했던 차량은 투싼 하이브리드로, 6만6885대가 팔리면서 전년 대비 65.9% 늘었다.

현대차는 지난해부터 미국 앨라배마 현지에서 생산을 시작한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싼타페 하이브리드의 생산량을 더욱 늘리고, 기아는 올해 하반기 북미 전용 모델인 준대형 SUV 텔루라이드 하이브리드를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전기차 전용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는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생산을 병행해 활용도를 최대치로 높여 올해 생산량을 연산 50만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행정명령만으로는 IRA 자체를 폐지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IRA 폐기를 위해선 상·하원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이긴 하지만, IRA 혜택을 받기 위해 타국 업체들이 공장을 지었던 미시간·오하이오 등 지역의 공화당 의원들이 현지 고용 악영향을 우려해 IRA 폐기에 반대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안회수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행정명령으로 이미 입법된 법안을 폐지하거나 그에 모순되는 내용을 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사법부가 행정명령 이행을 금지할 수 있고, 혹은 입법부에서 행정명령 무효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naive@hankyung.com